[R/리암노엘]변하지 않는 것 3
오아시스
리암 갤러거 x 노엘 갤러거
비현실적 타임리프물 주의
봄이었다. 꽃가루가 종이가루와 함께 공중에 하늘하늘 퍼지고 환호성소리와함께 이 곳 저 곳에서 찰칵찰칵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 교장선생님의 말도 지루한 교가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별로 지루하지않았다. 펑펑-종이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꼐 아이들은 각기 졸업앨범을 들고 돌아다녔다. 우는아이도있고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속에 리암이 있었다.
"리암! 여기 사인해줘!"
"리암!"
리암의 주변에는 여러 여자애들이 둘러싸고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졸업앨범의 마지막페이지에 사인을 해달라며 펜과 앨범을 내밀고 꺄악꺄악 소리를 내고있었고 중학교를 다른학교로 가서 리암을 보지못한다며 리암의 사인북에 어거지로 연락처를 적어넣는 여자아이들도 있었다.
리암은 아이들에게 모두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뭐라고해도 오년을 넘게 얼굴을 봤던 사이였다. 리암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웃어주었다. 리암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기에 사인을 해주고 받는대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윽고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어느새 리암을 둘러싸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모두들 가족의 손에 이끌려 꽃다발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있었다. 리암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리암은 씁쓰레하게 웃었다. 첫 졸업식이었지만 아버지가 올리가 만무했고 어머니는 오늘 올 수 없다며 꼭 맛있는 걸 사먹으라고 리암에게 돈을 쥐어주며 아침에 눈물을 글썽이셨다. 하루벌어 하루먹는 집에서 한명이 하루 일을 빠지면 당장 내일 한끼가 위험했기에 리암은 더이상 어머니에게 조를 수 없었다.
"우리애."
그리고 이 곳에서 들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퍼킹할 졸업축하해."
리암은 앞을 바라보았다.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눈동자는 리암을 보고 예쁘게 웃어보였다. 반달처럼 휘어지는 그 눈매에 리암은 심장이 쿵-하고 울리며 발바닥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일은?"
"저녁대랑 교대했어. 오늘은 야근해야해."
힘들게 그럴 필요 없는데 리암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또 마음이랑은 다른지 자신 때문에 일까지 교대하고 이 곳에 왔다는 노엘에게 헤헤 하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물론 대부분 폴이 사다준 과자들이라 실제로 받아봐야 별로 기쁘지않았지만) 미리받은 기분이었다.
"줘."
리암은 노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노엘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리암은 그런 노엘의 표정에 저도모르게 얼굴이 전부 풀려 푸스스 웃을 뻔한걸(실제로 지었다면 엄청 빙구같은 표정이었을 것이었다.) 겨우 참고 뚱한 표정을 대신만들어내며 물었다.
"꽃 없어?"
아-
노엘은 그제야 생각난듯 작게 탄성을 터트리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몇 남지않은 아이들은 너도나도 전부 꽃다발을 안고있었다. 노엘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끙-하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사실 이 쯤되면 리암은 별로 꽃같은건 어떻게되도 상관없었지만 리암은 그런 노엘이 곤란해하는 모습을(굉장한 악취미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있었다.) 좋아했기에 더더욱 일부러 입을 댓발 내밀었다.
"못사왔어. 미안."
노엘은 리암의 눈치를 살짝보며 말했다. 미리 말을 하지. 자신도 무안한듯 노엘은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이 아이도 저 아이도 모두들 꽃다발을 들고있었다. 음악시간에 바이올린과 기타를 둘 다 들고가겠다고 떼를 쓸 정도로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좋아하는 리암이었기에 꽃다발을 못받은걸로 굉장히 뚱해있을거라고 생각한 노엘은 자신의 막내동생이 어떻게 해야 달랠수 있을지 생각했지만 마뜩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맛있는거 사줄까?"
결국 내리고내린 결론이 저 것이었다. 리암은 여전히 뚱한표정이었다. 노엘은 리암의 첫 졸업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이러니 저러니해도 자신의 손으로 키운 예뻐하는 막내동생이었다.) 기분을 풀어주기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오늘은 아무래도 지출이 꽤 심하겠구나.
"대신 다른거해줄게. 응?"
노엘은 리암이 가지고싶어하던 팬시 켄짓(리암은 그녀의 대단한 팬이었다.)특집 포스터와 화보집을 떠올리며 말했다.
"뭐해줄건데?"
"뭐해줬으면 좋겠어?"
리암은 어느새 활짝 핀 목소리로 노엘에게 물었고 (이 쯤에서 노엘은 리암이 원하는 것이 그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엘은 그런 영악한 막내동생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키스해줘."
우뚝- 노엘은 자리에서 멈춰서 리암을 돌아보며 뭐? 라고 되물었다. 내가 무슨말을 저런 뜻으로 잘못들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지만 리암은 노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키스해달라고."
어느새 노엘을 올려보지않아도 눈을 마주칠 수 있을정도로 같은 눈높이가 된 리암의 눈이 노엘과 마주쳤다. 노엘은 리암의 그런 두 눈을 바라보다가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막내."
노엘은 리암 앞으로가서 리암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 리암은 많이 자라서 노엘이 팔을 반 쯤 들어야했지만 노엘은 개의치 않았다. 수 년을 해왔던 일이었다.
"엄마가 안와서 삐졌어? 그래?"
노엘은 리암의 이마에 짧게 베이비키스를 떨어트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아마 엄마가 오지않아 외로운 막내의 칭얼거림으로 치부한 모양이었다. 노엘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이마가 데인듯 화끈거렸다. 그렇지만 노엘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다정한 형의 모습을 하고 리암에게 말했다.
"대신 내가왔잖아. 졸업식에 형이오는 경우는 적다고. 퍽킹 내졸업식 땐 아무도 안왔어. 퇴학당했지만. 존나 멋있지않아?"
노엘은 킬킬 웃으며 리암의 머리를 한 번 더 헝클어주고는 웃었다. 그 모습은 리암이 10살 시절 보던 형의 모습과 너무나도 같아서 리암은 따라 웃음을 흘렸다.
"뭐먹고싶어? 우리애."
그리고 노엘은 리암의 팔을 이끌고 음식점으로 향했고 리암은 더이상 아무 말도하지않았다. 여기서 더 무슨 말을 할 수 없음을 리암은 스스로도 잘 알았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노엘의 귀에는 왜곡해서 들릴테니까. 그리고 그 것이 리암에겐 불행이기도 유리한 점이기도 했다.
"프렌치 프라이."
리암은 짧게 대답했다.
리암은 자신을 끌고가고있는 노엘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키는 어느새 노엘을 올려다보지않아도 괜찮을정도로 자라있었다. 그렇지만 노엘의 눈에 리암은 여전히 10살바기 꼬맹이인 채였다. 리암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면서도 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한 대 뒤섞여 안에서 웅성거리다가 곧 노엘이 "뭐해? 들어가지않고." 라는 말 한마디에 사라졌다.
지금은 그래, 지금은 이 상태가 좋았다. 노엘을 바라보고 밥을 먹을 수 있고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며 그를 보고 웃거나 화내고 어린애취급을 받더라도 그에게 안길 수 있는.
그냥 아직은 지금이 좋아.
리암이 13살 노엘이 18살 때 일이었다.
방은 예전 그대로였다. 파란벽지에 좁다란 책상하나, 메트리스가 삐걱이는 낡은 침대 둘. 그리고 다 내려앉은 조그마한 책상 하나. 다만, 달라진 것은 언제나 노엘의 침대 옆에 놓여져있던 기타가 사라진 것과 자그마한 옷장대용 서랍장이 넓어진 것이 다였다.
"나 없다고 울지말고, 울보 우리애."
"멍청아, 너없다고 안죽거든! 넓어져서 좋네!"
리암은 복받쳐오는 서러움을 꾹꾹 눌러담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마음 같아서는 노엘을 따라나선다고 떼를 쓰고싶었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하지 못했다. 이 곳에 자신을 혼자 두고 가는 노엘이 원망스러웠다.
"이디엇."
리암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만 바라보는 채로 그렇게 말하자 노엘은 손바닥으로 리암의 볼을 감싸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이제 리암은 노엘보다 한참이나 커져 노엘은 손을 한참이나 들어야했다. 노엘은 리암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싼 후 엄지손가락으로 리암의 눈가를 슥-쓸었다. 노엘의 엄지손가락이 축축히 젖어왔다.
"이건 뭔데."
"콧물이야. 멍청한 노올린."
노엘은 자신의 젖은 손가락을 리암 앞에 흔들어보인 후 슥슥 옷에 비벼닦으며 말했지만 리암은 잔뜩 잠긴목소리로 아니라고 항변했다. 어린 동생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떨리고있었지만 노엘은 그 것에 더이상 딴지를 걸지 않았다.
"갈게."
대신 리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짧게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노엘의 짐은 기타 하나와 옷가지들이 다였다. 나머지들은 모두 다 이 방에 두고간 채였다. 심심해서 장난삼아한 작곡들도 아끼는 레코드들도 돈을모아산 축음기도 손때묻은 피크도, 비틀즈 포스터도. 전부 이 리암과 노엘의 방에 아니 이제 리암의 방에 두고간 채였다.
리암은 노엘을 배웅하지않았다. 다만 노엘이 방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아래에서 엄마가 형을 마중가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리암은 대답하지않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집 안에는 아무도 남지않아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리암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끅끅거리는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방울방울져 얼굴에 맺혔다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리암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이젠 목놓아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방안에는 언제나와 같이 약한 먼지냄새와 퀴퀴한 곰팡이냄새 그리고 노엘의 냄새가 났다.
그날 밤 리암은 노엘이 두고간 비틀즈 레코드를 들었다. 낡은 레코드판에선 중간중간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리암은 다시 한 번 눈물을 터트렸다. 이번엔 엄마가 계셨기때문에 리암은 윽윽 거리고 목 안으로 울음소리를 삼킨 채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 밤 리암은 꿈을 꿨다. 꿈에는 노엘이 나왔지만 야한 꿈이아니었다. 노엘은 그냥 아무 말없이 우는 리암을 안아주었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여느 떄와같은 파란 비행기가 그려진 벽지였고 리암은 습관처럼 옆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이 찬 공기만이 존재하고있었다.
리암은 다시 비틀즈 레코드를 틀고 숨을 죽여 울었다. 노엘이 그리웠다. 그립고 그리워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노엘이 떠난 다음 날 리암은 많이 아팠다. 온 몸에서 열이났고 리암은 우리애 우리애, 하며 헛소리를 해댔다. 어머니는 결국 일도 나가지 못한 채 밤새 리암을 간호했지만 리암은 전혀 나아지지않았다. 이대로 죽어버리는가 싶을 정도로 리암은 심하게 앓았고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그리고 리암이 정신을 차린건 그날 저녁 노엘의 안부전화가 걸려왔을 때였다. 하루종일 정신을 못차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리암은 노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번쩍들고 수화기를 찾았다.
"퍼킹, 우리애 아프다며. 괜찮아?"
그리고 기어코 고집을 피워 수화기를 넘겨받았을 떄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리암은 다시 눈물이 새어나올 뻔 한걸 꾹꾹 참았다. 그리고 대신 평상을 가장해 당연하지 멍청아-하고 대답했다. 어쩐지 그렇게 말하고나자 정말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울고있는건 아니고?"
"너나 나보고싶다고 울지마."
짤막한 통화가 오가고 리암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날 처음으로 식사를하고 약을 먹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리암이 괜찮아진 영문을 몰라했지만 기뻐하셨다. 그리고 리암은 방에 들어가 다시 비틀즈 레코드를 틀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노엘의 목소리만이 귓가에 울렸을 뿐이었다.
리암은 어느새 익숙해진 비틀즈 레코드의 가락을 흥얼거렸다.
"노엘,내가 존나 끝내주는 밴드를 만들건데 말이야. 여기 들어오지않을래?"
노엘은 멍청한 표정으로 리암을 바라보았다. 평정을 가장했지만 노엘에게 내민 손은 긴장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리암은 평생 자신이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하고 생각하며 노엘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노엘이 리암의 손을 잡았을 때 리암은 말하지않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이제 노엘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해 전혀 관심없던 리암이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시작했는지 노엘은 평생가도 모를 일이였다.